와챠의 우당탕탕 코딩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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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

[2021.02.01]<천 개의 파랑>을 읽고

minWachya 2021. 2. 2.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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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주의)

SF소설은 오랜만에 읽어봤는데... 재밌게 잘 읽었다.

기수 로봇인 콜리가 낙마하는 3초 동안 해주는 주마등 같은 이야기...인데

결말로 시작해서 결말로 끝나는 구조가 참 맘에 들었다.

책을 다 읽으면 바로 다시 한번 읽게 되는 책이다.

앞부분을 다시 읽을 때 뒷부분의 내용이 압축되듯 들어있어서 그런 구성이 참 좋았던 거 같다.

 

가볍게 읽기에는 쪼끔 무거운 내용들이지만 다른 친구들에게도 추천해주고픈 소설이었다.

 

한 책에 로봇, 장애, 인간 중심 사회, 동물... 등등 많은 요소가 담겨있는데

그게 복잡하고 어지럽지 않고 잘 어우러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관절이 닳아 더 이상 뛰지 못하게 된 투데이와,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은혜가 대화하고 시선을 맞추는 장면이다.

다리를 못 쓰게 된 투데이는 경주마로서의 가치를 잃어 안락사를 당할 운명이었고

은혜는 다리를 못 쓴다는 이유로 남들과 다른 시선을 받아왔기 때문의 둘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구도가... 기억에 남는다.

 

또 마지막엔 조금이나마 달리게 된 투데이와, 이제 전보단 편하게 어디든 갈 수 있게 될 은혜도 서로 비슷한 구도라는 것도 기억에 남고.


콜리는 기수 로봇이다. 말을 타기 위해 가볍고, 충격을 잘 흡수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런 콜리는 편히 앉아있기도 힘든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낸다.

그곳에서 콜리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감을 느낀다.

 

나는 로봇은... 감점을 느끼지 않으니까,

느낀다고 해도 그건 느끼는 척하도록 설계된 알고리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콜리가 로봇인데도, 그냥 설계된 감정일 뿐인데도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함께 달린 투데이를 정말 살리고 싶어하는 마음, 누군가를 이해하고 위로하고 공감해주는 마음을 콜리가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로봇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들었다.

나는 로봇에게 정도 안 주고, 마음도 안 주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연재, 은혜, 보경의 상황이면 콜리에게 기대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전에 <인공 지능에서 인공 감정으로>라는 논문을 읽어봤을 때는

사교 로봇에 의해 사용자가 조종될 가능성이 있어서

로봇의 정서적 행동은 인간이 감정을 가지고 행위하는 것과 다르다고 알려주도록 로봇을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로봇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고, 로봇의 알고리즘도 인간이 짤 테니까

그런 알고리즘에서 나온 말과 행동들에 개발자의 사상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면 또 마음이 약해진다. 애초에 콜리는 실수와 기회로 생긴 로봇이니까...

 

음... 이쯤에서 말을 줄여본다면, 나는 그냥 로봇은 그냥 로봇 대하듯이 대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발로 차고 막대한다는 건 아니다. 사람처럼 막 공감하고 기대고 그러진 않는다는... 그런 의미로)

이건 책일 뿐이고, 콜리는 조금 특별한 경우고...

하지만 콜리는 누군가 자신에게 '살아있다'는 듯이 대해주고, 그렇다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는데...

아 어렵네...

이 책에선 로봇을 대충 다루는 사람과 소중히 다루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도 그런 고민을 좀 했나 보다.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질문이 또 들었는데

'왜 인간과 비슷한 로봇에게 꺼림칙함을 느낄까?'이다.

콜리가 조금만 로봇답지(?) 않은 행동을 할 때 사람들의 반응은 '이 로봇 좀 이상한데?'이다.

 

하지만 우리는 로봇을 조금이라도 더 사람같이 만들어보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막상 그런 로봇이 있으면 무섭다고 느끼는 것일까?

불쾌한 골짜기 뭐 그런 걸까?

기술을 못 믿어서 그런 걸까?

로봇의 행동이 인간의 예측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또 우리는 왜 로봇이 연기하는 건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로봇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러면 난 왜 콜리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는가.............

어이없네

내가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가...


그리고 은혜 얘기도 안 할 수 없다.

은혜는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있다.

그런 은혜에게 보경은 너에겐 한계가 없다고, 그런 거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해주는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에는 그런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을 생각하는 은혜를 보면서... 또 많은 생각을 했다.

 

은혜에게 필요한 건 턱을 넘을 때 휠체어를 밀어주는 배려가 아니고

은혜가 턱을 넘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었다.

다리 수술에 필요한 돈보단 아픈 다리로도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로움을 은혜는 원했던 것이다.


대책 없이 신기술을 추구하는 문제점도,

필요에 의해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듦에 의해 필요성을 얻게 된 것들도...

또 이런 모든 필요성이 인간을 위한 필요라는 점도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이 났다.

 

인간에 의해 가치를 얻고 잃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발전한 기술들은 전부 인간을 위해서만 썼다.

로봇이나 동물도 모두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소비되었다.

이런 기술 발전을 과연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한 발전일까


또 모두가 신기술에 적응할 수 없다는 것도 짚고 가야 한다.

각자의 사정, 취향이 있는 건데 신기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낙오자로 바라보는 건...

그리고 그런 신기술을 돈 없는 사람들은 누리지 못한다는 것에서

기술 발전이 또 다른 차별을 초래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차별 없는 세상은 없고, 기술 발전도 막을 수 없으니...

그래도 그런 차별을 인지했다면 차별을 줄이는 방향으로 다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는 기술은 나약한 자를 보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강한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술을 옳은 방향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


아,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생존율 3%에서 살아남은 보경과, 생존률 80%에서 죽은 소방관이다.

로봇은 생존률 3%인 보경의 목숨을 포기했지만 인간인 소방관은 그렇지 않았다.

생존률 3%에 로봇과 인간이 내린 판단이 이렇게도 달랐다.

 

그걸 보고 진짜... 와, 확률이라는 게 그냥 숫자일 뿐이구나... 를 깊이 느꼈다.

그런 무의미한 숫자로 만들어진 로봇을 보경이 가까이 두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솔직히 나도 그런 확률들 속에서 숫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로봇이 내린 판단을 내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판단은 스스로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로봇은 그냥 참고자료...


마지막으로

 

일단 나부터 다른 것들의 가치를 나의 필요로 정하지 말고,

남들에게 과도한 배려보다는 평범한 시선을 보내는 노력을 하자고 생각하게 됐다.

 

컴공을 배우다 보니 그 시선으로 느낀 점을 더 덧붙이자면,

알고리즘을 짤 때나... 뭔가 프로젝트를 할 때 취지를 바르게 설정하고,

만들어진 결과물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항상 생각하고... 책임도 지고... 그래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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